여행 에세이

그리스 산토리니: 여행이 즐겁지 않은 이유


그저 영문 모른 채 흘러가는 일상의 서클에 구멍을 내고 싶었다. 

새벽 3시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내 우울함은 나로 인한 것이 아닌 타인으로 인한 것이라고 일기장에 적어 내리는 이상한 매일 같은 것 말이다. 생각이 미치자 곧장 사표를 냈다. 그리고 터키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시작하면 건조한 일상이 저절로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터키는 아니었나보다. 가슴이 전혀 뛰지 않았다. 터키에서 설렘이 아닌 고민을 안고 다음 여행지인 그리스 산토리니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일찌감치 석양을 볼 수 있는 명당 자리를 찾았다. 해가 바다로 내려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졌다. 새하얀 이아 마을이 태양빛에 붕숭아물을 들였다. 뒤쪽에서 아까와는 크기가 다른 환호 소리가 났다. 나도 모르게 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화 속 엔딩 장면처럼 무릎 꿇은 남자가 금발의 여자에게 청혼을 하고 있었다. 군중들은 애초부터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기립하여 박수를 보냈다. 그녀의 손에는 반짝이는 반지가 끼워졌다. 더 깊게 내려온 태양은 주인공들까지 다홍으로 물들였다. 아-  산토리니는 이런 곳이었다. 세상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의 섬. 갑자기 공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긴 여정이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나 스스로 이 여행 속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구나. 단지 낯선 곳을 걷는 것 만으로 내게 행복이 저절로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숙소로 돌아가 하루 더 숙박을 더 연장했다. 미리 계획해온 여행 일정을 갑자기 바꾸는 건 사실 나답지 못한 일이었다. 떨어지던 태양이 내 안에 잘못 들어온건지 가슴이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꿈꾸는 라팜파의 여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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