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상영되고 있는 창작 뮤지컬 '밑바닥에서' 원작은 러시아 현대 소설가 막심 고리끼의 자연주의 희곡 '밤주막(THE LOWER DEPTH, 1902) 연극으로도 몇 차례 상영되었었다.

모두가 밑바닥에서 모두가 밑바닥 인생을... 그것이 밑바닥 사람들의 삶. 밑바닥에서 잡을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희망'이라고 불리는 보이지 않는, 그리고 존재하는 지 존재하지 않는지 조차 모르는 막연한 관념. 결국 내일을 밑바닥에서 또 살아야만 하는... 결국은 살 수 밖에 없는 그들에게 악마는 행복한 나타샤를 보내어 또 다시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자그마한 '악'을 선물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도, 가질 것도 없던 그들은 희망을 붙들지만, 악마의 선물은 그들의 삶을 또 다시 죽이고, 더욱 더 절망하게 만든다. 밑바닥에서는 아무 것도 소유할 수 없어. 희망을 갖겠다는 것은 사치다.

이런 내 감상을 듣고 내게 이 뮤지컬 티켓을 선물해준 분은 '너는 지나치게 부정적이야'라고 말했다. 그 분은 내가 이 뮤지컬을 보고 희망에 부풀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내가 한참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던 때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이런 비슷한 제목의 일본 여성의 자서전이 매우 인기었다. 그녀는 자신의 거친 인생을 세상에 내보이며, 당신은 살아갈 수 있어, 괜찮아, 라고 희망을 강요했다. 그녀는 밑바닥에서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희망을 끈을 붙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법고시 공부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희망에 의지하는 삶이 아닌 나에 의지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가진 것도 없었고, 가질 것도 없었다. 희망은 내게 가질 것을 주는 존재인가. '그러니까 당신도 희망을 갖고 살아'가 아닌, 차라리 '그러니까 당신도 죽도록 노력해' 허황된 희망에 의지하고, 넋놓고 방관한 것에 대한 결과에 좌절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나를 믿고 땀을 흘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희망에 의지한다.

목메달아 자살한 극중 밑바닥에서의 배우 아저씨는 '천재란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나를 믿을 수 없기에 나를 믿고 싶은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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